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즈텍 제국 (문단 편집) === 주변 부족과의 갈등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Conquista%20de%20M%C3%A9xico%20-%20La%20marcha%20a%20Tenochtitl%C3%A1n.jpg]]}}}|| || 스페인의 아즈텍 정벌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와 함께 행군하는 멕시코 원주민 부족 병사들 || 사실 위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메소아메리카 사회는 험난한 지형들로 인한 소통과 교류의 부재로 굉장히 분열되어 있었고, 도시국가들과 부족들마다 기술과 사회의 발달 수준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즈텍 종교는 [[틀락스칼텍]]이나 [[타라스칸]] 등을 제외하면 마땅한 경쟁 상대가 부재했고, 아즈텍 하위 부족들 역시 흔히 불리는 삼국동맹에 해당하는 도시국가들을 제외한다면 뚜렷하게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10,000명 단위의 대규모로 성장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기 때문에 선민사상이 상당히 두드러졌다. 아즈텍의 하위 부족 국가들을 말할 때 흔히 말하는 '''인간 가축'''이란 것 역시 어느 정도 과장이기는 하나 당시 아즈텍, 정확히는 테노치티틀란이 가진 [[선민사상]]을 명백히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이러한 관념에 의거하여 오랫동안 테노치티틀란은 하위 부족들을 험하게 다뤄왔으며, 이러한 선민사상과 그에 기반한 통치로 인해 오랫동안 반아즈텍 감정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에스파냐 군대가 틀락스칼라군과 연합하여 메소아메리카를 가로질러 진격하기 시작하자 그다지 수가 많지 않았던 에스파냐 군대는 현지 원주민들을 통해, 막 도착한 시기에 비해 수십 배에 달하는 대규모 군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대규모 군대가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염두에 두어야할 점이 있는데, 아즈텍은 대규모 전쟁을 벌일 능력은 있었으나 그러한 대규모 군대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할 지에 대한 전략•전술의 노하우가 없었던 반면, 에스파냐 군대는 근 800년을 이어온 [[레콩키스타]]의 대규모 전투들에서 전략•전술의 노하우를 배워서 왔다. 능력만 있는 쪽과 능력을 갖추고 이를 활용할 전략과 전술을 갖춘 쪽이 싸운다면 결국 능력만 있는 쪽이 패배하는 것은 당연했고, 결국 그리 되었다. 중남미 토착 문명의 복속과 멸망의 초석을 놓으며 큰 흐름을 주도한 건 [[콩키스타도르]]들과 그 뒤에 있는 스페인이었지만, 전근대적 기술력의 한계로 인하여 스페인 정복 이후에도 1500년대~1600년대를 통틀어 독자적인 원주민 세력의 자체적인 영향력은 상당히 유지되었고, 자연스럽게 무늬만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인 식민지 내에서 원주민 세력들이 따로 따로 서로 항쟁하며 경쟁하는 구도가 오래 지속되었다. 인근 원주민들의 도시국가들과 부족들 중에는 아즈텍에게 너무나 핍박받고 살아와서 아즈텍이라면 치를 떨며 원수로 여겼던 곳도 있었고, 아즈텍과 스페인 사이에서 아무런 의견 표명도 없이 잠잠히 있다가 전세가 스페인 쪽으로 기울자 아즈텍을 [[손절]]하고 그대로 스페인에 붙어버린 경우도 꽤 되었다. 아즈텍의 지배하에서 도리어 농민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단 말도 있었던만큼 아즈텍 근방 원주 부족 국가들의 참가는 흔히 알려진 수준으로 '모두가 아즈텍 원정에 참가했다'거나, '엄청나게 많았다'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태생이 도시국가의 복속과 동맹으로 이루어진 제국인 만큼 당연히 아즈텍도 이러한 동맹시의 경우 가혹한 통치를 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들 또한 적극적으로 적대할 이유가 적었다. 흔히 말하는 꽃전쟁을 통한 인간가축과 같은 형태는 틀락스칼라와 같은 적대세력이나 문명수준, 인구규모가 낮은 소수부족을 대상으로 한것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아즈텍 정벌에 참가한 원주민들 역시 꽤 되었고,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아즈텍 정벌에 나서자 자발적으로 스페인과 동맹을 맺고 꽤 큰 규모의 병력까지 제공하여 스페인군과 함께 싸웠다. 아무리 화력에 무기/갑주가 좋아도 보급 등의 문제로 인해 스페인인들만으로는 무리 또는 굉장히 힘들었을 전쟁이 아즈텍 제국 내부의 피지배 원주민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택에 유리해질 수 있었다. 당시 스페인과 스페인의 경쟁 라이벌이었던 [[포르투갈]]이 식민지배했던 다른 아메리카 지역들의 경우를 보면… * [[마야 문명]]이 위치한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벨리즈]] 등 '''중앙아메리카 북부 일대'''의 경우, 각각의 도시국가 및 여러 군소 부족 하나하나와 맞서 싸워야 했기 때문에 100년이 넘도록 스페인군의 정복 활동이 이루어져서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에 가서야 [[스페인]]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 스페인의 식민 진출 이전 아즈텍의 영향권에 속해있지 않았던 [[캘리포니아 반도]], [[치와와(멕시코)|치와와]], [[두랑고]], 코아우일라 등 '''멕시코 북부 지역'''과 [[캘리포니아 주]], [[애리조나|애리조나 주]], [[뉴멕시코|뉴멕시코 주]], [[텍사스 주]] 등 '''미국 서남부 지역'''들의 경우에도 마야 문명권이었던 멕시코 남부 지역,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벨리즈 같은 중미 북부 지역들과 비슷하게 콩키스타도르들이 멕시코 북부 지역과 미국 서남부 일대에 분포하던 [[나바호]]족, [[푸에블로]]족, 치리카와족, 추마시족, 후파족, 포모족 등 현지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을 각각 정벌하는 데 많은 시간들을 쏟아야 했기에,[* 특히 뉴멕시코 주의 경우, 스페인 세력이 점령했다가 원주민들의 반격으로 축출되는 일까지 있었다.] 17세기 중후반기에 와서야 스페인에게 정복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토가 방대하고 척박한 사막지대가 많아 스페인에게 정복되지 않은 원주민 부족들의 상당수가 잔존해있었으며, 이후 [[스페인 제국]]이 몰락하고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으로 영토를 팽창하던 미국과, 스페인에서 독립한 옛 식민지령 국가였던 멕시코에 의해 모두 완전히 정복되었다. * [[잉카 제국]]의 영역권에 속해 있었던 '''[[페루]]와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경우, 이전 멕시코 지역에 있었던 아즈텍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침공 이전 잉카 제국과 카나리족, 차차포야족, 챵카족 등 피지배 원주민 부족 간의 내분과 갈등이 증폭되면서 이들 모두 남미 대륙으로 들어오던 스페인인들과 손을 잡아 잉카 제국을 공격했고,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의 함락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잉카 멸망 이후에도 망코 잉카 유판키와 [[투팍 아마루]]와 같은 잔존 잉카 세력들이 40년 가까이 [[빌카밤바]]에서 항전하다가 1572년에 스페인에게 완전히 정복, 평정되었다. * '''[[파라과이]]'''의 [[과라니]]족의 경우, 스페인군을 상대로 한 [[게릴라]] 방식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져 스페인 식민 당국이 유화책으로 겨우 달랬다. * [[승마]]술이나 화약 무기 등 유럽식 전쟁 방식에 빠르게 적응하여 습득하고[* [[미국]]의 [[인디언 전쟁]] 당시 미국 중서부/남서부 지역에서 항전했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비슷했다.] 종족들 간의 결집력도 있어서 본격적으로 스페인군에게 반격까지 가했던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에 분포하던 [[마푸체]]족과 카웨스카르족, 테우엘체족[* [[후안 페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바로 이 부족 출신이었다.] 같은 남미 원주민 부족들의 경우,[* 반면 아르헨티나와 [[칠레]] 중북부 일대에 살았던 차루아족, 아이마라족, 케추아족 같은 다른 남미 원주민 부족들은 커다란 저항없이 스페인군에게 손쉽게 정복되었다.] 결국 스페인 식민제국 시절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평정을 못하여 북부 지역은 스페인이 지배하고, 남부 지역은 원주민들이 지배하는 불완전한 상태였다가, 식민지였던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양국 정부가 추진한 남부 개척 정책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 *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유일한 [[포르투갈]] 식민지이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 영토 면적이 가장 방대했던 [[브라질]]의 경우, 포르투갈이 그 방대한 면적의 브라질 영토를 전부 다 식민지배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식민지 개척 초기에 해안 지역에만 포르투갈의 통제력이 미쳤고, 포르투갈의 통제력이 닿지 않았던 '''서부 내륙 [[아마조니아]] 밀림 지역'''의 원주민 부족들 다수는 반독립 상태를 유지했다가 이후 포르투갈 식민지시대 중후반기에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 서부로 대거 진출하여 본격적인 서부 개척이 이뤄지고, 식민지였던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완전히 브라질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심지어 '''[[아마조니아]] 지역'''은 인간의 접근이 어려운 [[정글]] 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오늘날에도 [[브라질]] 정부의 행정력이 닿지 못하는 곳이 많으며, 그래서 21세기에나 그 존재가 알려진 미접촉 부족이 꽤 있는 편이다. * '''[[베네수엘라]]'''의 경우, 카라카스족의 카시쿠 과이카푸로 추장이 베네수엘라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과 연합하여 밀림과 습지대가 많은 베네수엘라의 지형을 활용해 스페인군에게 항거하는 등 현지 원주민들의 저항이 끈질기게 이어졌고, 결국 1552년에 와서야 완전히 스페인에게 정벌되었다. * '''[[우루과이]]'''의 경우, 스페인이 노리던 [[은]], [[금]], [[구리(원소)|구리]] 등 지하 자원들이 여타 라틴아메리카 지역들보다 빈약한 데다가 식민지 개척 초기 [[축산업]]이나 어업을 빼고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이 별로 없어[* 지금도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육우 사육 등 축산업이 잘 나가는 나라이다.] 페루,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칠레 같은 다른 스페인령 남미 지역들에 비해 사실상 쓸모 없는 땅에 가까웠고, 내륙 오지에서는 차루아족 같은 현지 원주민들이 극렬하게 저항했으나, 이후 스페인이 막대한 병력수를 동원한 정복 전쟁을 밀어붙여 차루아족 등 현지 남미 원주민들이 차지하던 내륙지대까지 모조리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일부 잔존 부족 세력들이 스페인 식민지 시기 후반까지도 살아남아 있었는데 우루과이가 독립국가가 된 이후에 와서야 우루과이 정부에 의해 모두 정벌되었다. * 아즈텍, 마야 문명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멕시코 중남부 지역에서 번성하던 다른 원주민 문명인 '''[[타라스칸]]'''(푸레페차)은 1521년 스페인의 공격으로 아즈텍이 멸망한지 9년뒤인 1530년에 스페인군에게 정복되었다. * [[코스타리카]], [[파나마]], [[니카라과]] 등 '''[[중앙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국가들의 경우, 자그마한 국토 면적에 비해 습하고 험한 늪지대와 밀림들이 워낙 많아 18세기까지 스페인의 직접적 통제가 먹히지 않는 내륙 지역들이 군데 군데 존재하고 있었다. * [[남극해]]와 가까운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티에라델푸에고 섬]]'''에 살았던 야간족과 오나족 같은 원주민들의 경우, 한랭하고 거친 기후에 스페인조차도 쉬이 침략하지 못해 마푸체족과 테우엘체족 등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 본토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까지 사실상 반독립 지역으로 남아있었지만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하고, 1860년대와 1870년대를 전후하면서 남아메리카 남부 본토 지역을 완전히 정벌한 후, 티에라델푸에고 섬으로 진출해 칠레령과 아르헨티나령으로 분할•합병했다. 이후 칠레군과 아르헨티나군, 백인 이주민들에 의해 원주민들은 모조리 학살되거나 토벌되었다[[http://todayhumor.com/?humordata_1862510|#]]. 다른 지역 원주민들은 다 오랫동안 잘 버티거나 훗날 정복되었어도 그럭저럭 버텼지만, 아즈텍만은 이러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스페인 콩키스타도르 군대와 연합한 원주민 부족의 공격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물론 아즈텍은 여러 부족국가들과는 통일되어 있어서 중앙이 무너지면 구조 자체가 무너지기 쉬웠고 그렇다고 잉카만큼 거대한 영토를 확보했냐면 그것도 아니라서 아즈텍이 보유한 영토는 [[한반도]] 크기에 불과했다. 반면 잉카는 아즈텍의 10배 가까운 영토를 자랑했다. 심지어 잉카는 남북으로 긴 제국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중앙이 무너지자 그냥 남쪽으로 파천하여 항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 역시도 아즈텍이 가지지 못한 장점이었다.] 특히 제물 대상자들의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한 지지가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들에게 스페인 정복자들은 자신들이 제물이 되는 것을 막아줄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물이 될 뻔했을 때 스페인인들이 구해준 적도 있었다. 특히 그 대표격인 [[틀락스칼텍]]인들은 [[슬픔의 밤]]에서 에르난 코르테스가 탈탈 털려서 도주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코르테스를 도운 보답으로 영토 보존, 자치권, 세금 면제, 아즈텍 영토 할양 등의 혜택을 약속받았고, '''이 약속은 스페인이 물러날 때까지 지켜졌다.''' 추가로 코르테스는 끝까지 자신을 도운 틀락스칼텍인들에게 스페인에서 가져온 [[돼지]] 수십 마리를 선물로 주고 잠시 스페인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돼지가 30,000마리에 달할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물량과 동원 전력의 측면으로 보면 사실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은 틀락스칼텍을 주축으로 한 다양한 '''반아즈텍 동맹군'''의 업적에 가까웠고, 이 중에서 스페인 세력은 분명히 주도적인 지도 세력이긴 했지만, 머릿수로는 훨씬 더 많은 반아즈텍 토착 협조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은 인구가 1,000만 명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테노치티틀란 공방전 자체도 스페인인들은 2,000명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텍스코코, 틀락스칼텍, 오토미 등의 원주민 동맹군이 주력이라서 이들을 합한 100,000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50,000명 정도 규모의 아즈텍 방어군을 압도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인구는 훨씬 많았지만 구심점이 없어서 맨날 아즈텍에게 당하고만 살았던 [[틀락스칼텍]]은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라는 제대로 된 [[구심력|구심점]]이 생겨버리자 아주 거칠 것 없이 아즈텍을 압살해버렸다.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250,000명이 살던 당대의 초거대 도시로, 호수 속에 있었던 자연요새였다.[* 테노치티틀란은 스페인에 의해 함락된 후 호수가 메워져 현재의 [[멕시코 시티]]가 되었는데, 호수를 메워서 만든 도시라는 특성상 [[멕시코시티 도시철도]]를 건설하기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테노치티틀란의 250,000명의 시민들은 유사시 전부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인들이 주변 원주민 도시들과 군사 협력을 하고 조립식 전함을 동원해 호수를 장악해서 한 번에 도시에 갇히게 되자, 호수는 오히려 아즈텍인들을 봉쇄하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텍스코코 호수는 석회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본래는 마실 수가 없었는데, 고립된 상황 속에서 이 물을 마시게 된 아즈텍인들은 병이 들어 더욱 위기에 몰렸다. 철저히 고립된 상황과 석회 성분이 많은 호수는 전염병의 대유행도 불러왔다. 결국 1521년, 스페인인들과 원주민 동맹군의 총공격에 아즈텍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그들의 주도면밀한 공격을 당해내지 못해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 원주민 동맹군은 아즈텍에 대한 원한이 단단히 쌓여 있었던지라 스페인인들보다 더 잔혹하게 아즈텍인들을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즈텍인들이 학살당한 것은 아니었다. 항복한 사람들은 코르테스의 비호 아래 용서받았고,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만 학살되었다.[* 코르테스가 남긴 기록에 보면 "메시카(아즈텍 민족)를 죽여라!"라면서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죽했으면 스페인 장교들과 병사들이 기겁하여 말렸을 정도로 아즈텍인들에 대한 증오는 실로 엄청났다.] 항복한 아즈텍인 중에서 귀족이자 아즈텍 군사령관이었던 틀라쿳신은 마지막까지 아즈텍의 저항을 이끌며 코르테스에 맞섰으나 아즈텍이 멸망하고 나선 이후에는 친스페인 인사가 되어 [[멕시코 시티]]를 재건하는 직책까지 맡았고, 이를 잘 수행해내어 스페인 총독으로부터 작위를 받고 상당한 수의 하인과 땅, 고급 주택을 보유한 고위 인사가 되었다.[*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이라는 스페인 작위를 계승해오고 있다.] 몬테수마 2세의 황녀인 아즈텍의 공주 테쿠이츠폿신은 [[틀라토아니]]의 적통인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코르테스의 적극적인 보호로 아즈텍 황족을 말살하려 했던 원주민 동맹군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고, 코르테스의 배려로 스페인인 장교 알론소 데 그라도의 아내가 되어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 현존하는 몬테수마 2세의 후손들은 모두 그녀의 후손들이며 이 가문은 1935년 멕시코 정부에서 지급을 중단할 때까지 연금을 수령받았다. 남계로 내려온 적통도 있었지만 그쪽은 1836년에 마지막 후손이 뉴올리언스에서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대가 끊기게 되었다. 잔존한 아즈텍인들은 테노치티틀란 재건과 지방 반란을 진압하는데 동원되었는데,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틀락스칼라의 군대와 구 아즈텍 제국군이 한 깃발 아래 싸우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촌극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어서, [[멕시코 제1제국]] 건국 이래로 테노치티틀란의 후신인 멕시코 시티와 틀락스칼텍의 후신인 틀락스칼라 주는 현재까지도 같은 멕시코 땅이다. 물론 역사가 역사인지라 두 지역 주민들은 서로를 각각 [[틀락스칼텍|매국노]]의 후손과 [[테노치티틀란|식인종]]의 후손으로 욕하는 등 현재까지도 사이가 매우 나쁘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교황청에 투서를 넣어 자신과 원주민 현지처 사이에서 생긴 자식들에게 적자 지위를 부여해 재산을 상속하게 하거나,[* 전부는 아니었지만 서장자 마르틴 코르테스를 비롯한 4명은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친분이 있었던 원주민과의 혼혈들에게 이런저런 조치를 취했다. 그 때문에 에르난 코르테스는 현대 [[멕시코]] [[메스티소]]의 아버지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